동양화가 유근택이 낯설게 해석한 일상…갤러리현대 개인전

황희경 기자 = 동양화가 유근택(58)은 오래전부터 '일상'이라는 화두에 몰두해 왔다. 아직 대학원생이던 시절 관념적인 거대 담론이 지배하던 동양화단에서 돌파구를 찾았던 것이 바로 '일상'이라는 키워드였다.

작가에게 일상이란 날마다 반복되는 같은 풍경이 아니라 그 속에서 잊힌 감각을 깨우치게 되는 또 다른 세계를 의미한다.

그가 25일부터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6년 만에 여는 개인전은 일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낯선 풍경으로 재해석한 주요 연작을 소개하는 자리다.

1층 전시장에는 '창문'과 '거울', '이사' 연작이 걸렸다. 서울 성북동 자택 창문 너머로 보이는 새벽 풍경은 사실 변함이 없지만 그것을 마주하는 작가의 내면과 개인적인 서사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모습으로 변주된다. 어느 날은 차가운 공기의 서늘한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고, 또 어느 날에는 흐릿하게 일렁이는 불빛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사' 연작에서는 실내에 익숙하게 놓여있던 사물들이 이사를 위해 포장됐을 때 마치 생명체처럼 느껴지는 감정을 담았다.

2층 전시장은 실내 공간에서 바깥 풍경으로 시선을 옮긴 작품들이 놓였다. '봄-세상의 시작' 연작은 땅을 관찰하는 데서 시작했다. 새싹이 딱딱한 땅을 뚫고 나오는 데서 경이로움을 느낀 작가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에너지를 회화로 끌어오고 싶었다. 마치 두더지게임을 하듯이 일상의 사물들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듯한 모습이 초현실적으로 그려진다.

이번 전시 제목이기도 한 '반영' 연작은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의 숲 풍경과 물가에 반사된 풍경을 그린 것이다. 상단에 다양한 숲의 풍경을, 하단에는 물가에 반영된 숲의 추상적 풍경을 담은 구도다. 풍경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아 이곳에 갈 때마다 새로 드로잉을 하게 된다고 작가는 전했다.

지하 전시장에는 작가의 대표 연작 중 하나인 '분수' 시리즈가 놓였다. 1990년 중반부터 분수를 그려 왔지만, 최근에는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그 의미가 확장됐다.

24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요양병원에 있다가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의 사연을 전했다.

작가는 "당시 면회도 어렵고 전화도 걸 수 없는 상황에서 간병인에게 매일 그림 사진을 보내며 아버지에게 보여달라고 했다"면서 "10개월간 그런 과정을 통해 분수에 대한 생각이 변해갔다"고 말했다.

이어 "분수 그림은 원래 풍경 요소에서 출발했지만, 물줄기가 올라와서 쓰러지는 순간이 비극적이면서도 찬란하다는 역설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결국 쓰러지지만, 다시 올라오는 방식이 인간이 서 있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고 이를 어떻게 그림으로 끌어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예전 작업에서 풍경의 한 요소로 분수를 그렸다면 이번에는 물방울 하나하나의 존재감에 집중했습니다. 전시장에 오는 관람객들이 분수를 바라보면서 아무런 생각도 없어지며 감상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렀으면 하는 욕심으로 전시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전시는 12월 3일까지.

갤러리현대는 이번 전시를 음악적 언어로 풀어낸 앨범 '[유근택: 반영]'도 함께 발매한다. 재즈 기반 뮤지션이자 베이시스트인 정수민이 전시의 주요 연작을 곡 제목으로 작업한 재즈 기반의 앨범이다. 다음 달 8일 음원사이트에서 전체 음원을 공개하고 12월에는 LP로 발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