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피해 우려한다더니…美, 이스라엘에 폭탄·전투기 지원

의회 통보 없이 조용히 집행…"이스라엘 지원에 조건 달지 않아"

이스라엘의 폭격에 숨진 아들을 품에 안은 팔레스타인 남성
이스라엘의 폭격에 숨진 아들을 품에 안은 팔레스타인 남성

[AP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김동현 특파원 =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를 겨냥한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세가 큰 인명 피해를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면서도 수십억달러 상당의 무기 지원을 조용히 승인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P가 익명의 국방부·국무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이스라엘에 2천파운드급 MK84 폭탄 1천800발과 500파운드급 MK82 폭탄 500발을 지원하는 것을 승인했다.

2천파운드급 폭탄은 도시의 여러 구획을 파괴할 정도로 강력해 서방국들이 인구 밀집 지역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자주 사용해왔다.

또 국무부는 이스라엘에 F-35A 전투기 25대와 엔진 등 25억달러 상당의 무기를 지원하는 것을 지난주 승인했다.

이를 두고 WP는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의 전쟁 수행 방식을 두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갈등을 빚긴 했지만, 무기 지원을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안은 고려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WP는 친이스라엘 로비단체인 미·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가 바이든 행정부의 조건 없는 무기 지원 정책을 강력히 지지해왔다고도 전했다.

백악관 당국자는 "우리는 이스라엘이 자국을 방어할 권리를 계속해서 지지해왔다"며 "지원에 조건을 다는 것은 우리 정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라파의 건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라파의 건물

[신화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의 우군을 포함한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스라엘이 라파 공세에서 민간인 피해를 줄이고 구호품 반입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하지 않는 한 미국이 무기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민주당의 크리스 밴홀런 상원의원은 인터뷰에서 "가자지구에 사용될 폭탄을 더 승인하기 전에 이스라엘에서 기본적인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면서 "바이든 행정부는 네타냐후 정부가 라파와 관련된 요구, 그리고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인도적 지원이 가게 하라는 요구를 무시하는데도 이스라엘에 더 많은 폭탄을 보내는 게 모순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WP는 이번 폭탄과 전투기 지원은 수년 전에 의회 승인을 받고도 그동안 집행되지 않은 건이라 바이든 행정부가 지원 사실을 의회에 다시 통보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무기 지원에 대한 투명성을 요구해온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의회 통보 의무를 피하려고 일부러 과거 승인 건을 지금 집행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국무부 당국자는 "의회에 통보해 승인받은 게 한 건이라고 해도 그것을 실제 집행할 때는 수십년간 여러 개의 개별적인 대외군사판매(FMS)가 이뤄질 수 있다"면서 F-35 전투기 같은 큰 구매 건은 수년간 쪼개서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설명했다.

라파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피해 몰려든 팔레스타인인 최소 120만명이 있으며 이스라엘이 대규모 군사작전을 개시할 경우 막대한 민간인 피해가 우려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라파에서 민간인 피해를 줄일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네타냐후 총리에게 안보 당국자들을 워싱턴DC로 보내달라고 요청했으나,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휴전 촉구 결의안 표결에서 기권한 것에 반발하며 대표단 파견을 취소했다.

양국은 대표단 파견 일정을 다시 잡기로 한 상태라고 백악관은 밝혔다.


답장을 남겨주세요